술책/모략/명성/공적에서 탈출하기

원저 : 왕멍, 나는 학생이다.
실린 곳 : ,
왕명(임국웅 옮김) 2004, 나는 학생이다. 들녘출판사

이 책은 제목에서 보듯 공부하는 학생처럼 사는 삶이 얼마나 재미나고 의미있는지를 쓴 책이다. 저자 왕멍은 루쉰과 함께 20세기 중국문학의 양대 문호로 평가받고 있다. 저자는 마오와 같이 혁명에 참가했지만, 그보다 일관되게 한 번도 쉬지 않고 했던 일은 '학습'이었다고 말한다. 일상생활 자체가 공부의 연속이며 그런 인생 줄거리가 바로 배움이라고 스스로 말한다.(책 33쪽)

그런데 공부를 하되 조심해야 할 것을 누차 강조한다. 우선 자기가 공부한 내용을 그대로 도그마처럼 절대화하여 교조주의에 빠지고 마는 공부는 오히려 더 위험해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자기가 읽은 텍스트를 텍스트 그대로 해석하지 않도록 그는 당부한다. 나아가 자기가 배운 것을 지식의 전부로 착각하여 그런 지식으로 세상을 잣대질하는 지식의 외골수로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책은 모든 것이 아니며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지식들의 모음이기 때문이다. 고전조차도 내가 사는 상황에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력을 전적으로 믿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기본 태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84쪽)

저자 왕멍이 말하는 4무는 다음과 같다.
첫째 無述 술책을 쓰지 않으며,
둘째 無謨 모략을 없애며,
셋째 無名 명성을 쫒지 않으며,
넷째 無功 공을 세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책 15쪽)

저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뭇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태도를 중시한다. 저자가 쓴 재미난 이야기를 옮겨본다. 한 부잣집 주인이 많은 손님을 초대했다. 많은 손님을 초대한 주인이 하는 말이다.(88쪽)

1) "왜 올 사람이 안 오지?" - 이 말을 들은 옆의 사람들이 당황하고 가버리니,

2) "가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왜 가는 거지?" - 그러나 남아 있는 사람들도 심기불편으로 가버리고,

3) 가려는 사람들보고, "당신들을 두고 한 말이 아닐쎄." - 그나마 남아있는 사람들도 기분이 상했다.

이처럼 인간관계는 일방통행도 아니며 자기중심적이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기대를 크게 하면 할수록 실망도 커서 자기 안에 분노만 쌓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타인을 사랑하지만 타인에게 의탁하지 않는 관계가 중요하다고 한다.

저자 왕멍이 <무위>에 대한 한 이야기는 아주 독특하며 의미있다. 그 어려운 노장철학을 내세우지 않고서도 일반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상식과 감정의 차원에서 무위를 설명해준다.
(1) 무위는 효율적 삶의 태도라고 한다. 그리고 감성에 치우지 않으면서도 번잡하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의 절약이 무위의 실천이라고 한다.
(2)무위를 통해서 번뇌를 없앨 수 있다.
(3)도덕은 복잡한 규범으로 얽힌 윤리학에 있기 보다 무위의 태도가 바로 도덕원칙이라고 한다. 무위를 통해서 집착없이 자신을 지킬 수 있으며 나아가 자아존중(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 무위는 신념이면서도 책임감의 바탕이다. 무위의 삶은 희열을 주면서 동시에 나에 대한 인내심을 키워준다고 한다. 무위는 청명하며 명량하며 침착하며 유머스런 심성을 키워준다 그리고 무위의 태도가 자신의 품격을 유지해준다는 것이다.
(4) 무위를 통해서 양생을 도모할 수 있다고 한다. (132쪽)

한편 왕멍은 그 스스로 나서지 않더라고 일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低調原則 삶의 수동적 행동윈칙을 말한다.
첫째 현실에 참여하되 남 탓하지 않는다.
둘째 내가 옳은 일,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타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셋째 '절대적'으로 안돼, 절대적으로 이것은 저것과 달라,, 라고 하는 절대적 구분, 흑백 논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넷째 모든 사람이 따르는 획일적인 가치는 없다. 즉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133쪽)

왕멍은 혁명 와중 야전생활에서도 배움을 실천했다고 한다. 뭐나 책으로 배운다거나 혹은 교실에서 배우는 그런 제도적 교육이 아니라 일상에서 배우는 길이 많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과 주변 사물, 주변 자연이나 주변 상황을 주의깊게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수학을 잘 하려면 사물 이면으로 뚫고 들어가서 침투하는 예술적 감각으로 세상을 관찰해야 한다고 한다. 시와 그림을 잘 그리려면 선입관에서 벗어나 관습적인 것을 깨부수는 과학적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면 된다는 뜻이 내 가슴에 깊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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