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소위 자폐아,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실제로는 증상 아이들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1)문화환경의 변화로 인해 증상 노출이 늘어난 것이며 (2)자폐아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자폐로 규정된 빈도가 늘어난 것이다.

오즘들어 상대적으로 좀 산만한 아이들을 손쉽게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로 규정함으로써 내 아이를 환자로 만들어 버리는 문명의 오류들이 생긴다. 자폐 스펙트럼은 ADHD 경우와 다르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보이는 아이의 부모가 먼저 내 아이를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순간에 아이의 성장은 더 어려울 수 있다. 정상과 비정상은 본질적으로 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정신질환 진단매뉴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다.

정신의학이 의철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데에는 1950년대 처음 출간된 정신질병의 진단매뉴얼에 해당하는 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정신질환 진단과 통계 편람; 정편)이 있었다. 정편DSM은 정신병증 환자를 다룬 포괄적 임상텍스트로 출발했다. 정편DSM 매뉴얼의 철학적 의미는 질병을 규정하는 본질(본질주의 질병관)이 과연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그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 그러면 질병과 질병부존재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있다.

예를 들어 패티시즘과 소아애는 1975년 DSM-3판에서 질병으로 규정되지 않았으나 2013년 DSM-5판에서는 질병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소아애 증상에 대한 다양한 증거와 충분한 통계자료가 확보되면서 소아애를 성적 편향증이라는 질병으로 분류하였다. 거꾸로 정신질환으로 볼 수 없는 환경성 질환을 질병으로 규정하는 악의적인 사례도 있었다. DSM은 질병 분류를 본질주의 방법론으로 할 수 없다는 구체적인 사례이다.

지구 생태환경운동의 신세대 리더인 스웨덴의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자폐 스펙트럼(아스퍼거장애)에도 불구하고 COP-26에 모인 각국의 정치리더들을 리드하는 상징을 만들어내었다. 내 아이를 키우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을 키우는 것과 같다. 이를 스스로 인정한다면 내 아이의 자폐 스펙트럼이 내 아이의 미래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그레타 툰베리의 기후변화 환경운동 여행을 그동안 따라다녔지만 한번도 겉에 나서지 않았던 소녀의 아버지를 보고 그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소녀가 아니라 성인이 되어 혼자 여행한다고 함)


그레타 툰베리 기념우표를 제작한(2021년) 스웨덴 우정국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깡귀엠의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 그리고 푸코의 <임상의학의 탄생>은 다수의 질병에서 해당 질병을 규정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와 규정은 전통과 문명사회의 부산물임을 강조한다. 아스퍼거 장애도 이제는(DSM-5부터) 자폐 정신질병으로 규정되었는데, 그런 규정 자체가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질병 규정은 절대적이거나 본질적이어서는 안 되며, 문화적으로 변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 바로 의학철학의 요점이다. 나아가 정상과 비정상을 왜 굳이 구획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구획하려는 주체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것이 철학이다.

이와 관련하여 DSM에 대하여 설명을 아래처럼 보완한다.


● 정신질환을 규정할 수 있는지 그 여부를 묻는 텍스트가 되기 위하여 DSM은 이론중립성이라는 과제를 실현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당시(1930-40년대) 다양한 각종의 정신의학 해석들이 난무했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들 사이에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과학적 객관성을 정신의학 임상에 도입할 필요가 있었다.

● DSM은 질병의 정의와 분류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존재론적으로 질문한 최초의 객관적 체계다. 증상의 어디까지를 정상적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지 아니면 어떤 증상부터 정신질환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수많은 임상사례를 통해서 매뉴얼로 만들고자 했다. 여기서 매뉴얼의 의미는 의과대학 교육기관에서 매뉴얼이 교과서로 사용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질병 분류 체계화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근거주의의학과 분석주의 의철학 해석을 시도한 웨이크필드의 영향력으로 1975년 DSM-3판이 나왔는데, 이는 질병과 건강에 대한 실증적 해석에 힘을 실어주었다.

● 2013년 DSM-5판은 임상에 필요한 철학적 문제들을 더 많이 다루었다. 전통적 심신론에서부터 신경생리학적 주제에 이르기까지 사회적으로 논쟁이 되고 있는 예민한 문제들을 잘 정리해주고 있다.(ICD 2018) DSM-3판(1975)까지 질병 분류의 기준은 대체로 실재론의 철학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반면, DSM-5판(2013)부터 완화된 실재론 혹은 문화주의적 성격으로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

일반 질병에서 분류는 곧 질병을 규정하는 정의를 전제하기 때문에 분류는 의학 존재론의 핵심인데, 그 중에서 정신의학 범주는 의철학 안에서 매우 중요한 분야로 분류된다.(Murphy 2006)

DSM의 변화에서 보듯 정신의학에서 분류는 고정적이지 않으며 사회적 조건에 따라 수정될 수 있을 정도로 유동적이다. 그래서 정신의학의 질병분류는 고정된 실재론 기반에서 이뤄지기 곤란하다. 정신질병 관련 현대 의철학은 기존의 실재론적 분류 기준을 무시하지 않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문화적이고 사회적 변동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완화된 실재론적 분류 성향을 요청하고 있다.


(최종덕, 의학의 철학. 17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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