忍 仁 人 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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忍인 仁인 人인 因인

아주 어릴 때다. 중학교 2학년쯤이었을 것으로 기억된다. 나의 인간관계는 가족관계에서 친구관계로 바뀔 때쯤이다. 소위 말해서 사춘기였다.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남들 다 그러듯이 말이다.그때 내 인생에서 처음 친구 그룹을 만났다. 고등학교 때는 또 다른 그룹의 친구들을 만났는데, 학교 졸업 이후에는 같이 만날 일이 드물었다. 각자의 진로에 따라 새로운 환경에 맞춰 취향이 달라지고 지역도 달라지고 관심도 달라져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忍의 시대


친구들과 무관하게 나는 자존감 때문이었는지 혼자 있기를 즐겼다. 감성적이었는지 모르지만 사람들(가족) 관계에서 나의 인성을 나름대로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기억나는 것이 있는데,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빈 종이에 “忍”이라는 한자를 많이 썼었다. 忍은(인의 의미가 아니라 인이라는 글자-기표가) 나라는 마음의 그릇을 크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 스트레스를 충분히 받아 낼만한 마음의 그릇이 크고 넓으면 모두 소화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사실 “스트레스”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아마도 주변으로부터 무시 받거나, 압박을 받거나 소외받는다고 여겨진 부정적인 나의 감정상태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감정 상태, 즉 스트레스의 의미는 마음의 그릇이 좁고 작아서 외부의 감정촉발 요소들을 담아낼 수 없이 넘쳐나는 물의 양이라고 나름대로 규정했었다. 따라서 마음의 그릇을 크게 가지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외부 스트레스를 이기는 나의 내구력을 나는 참을 忍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무수히 忍자를 빈 종이에 쓰곤 했다. 그렇게 마음을 넓히는 마음먹기(마음가짐, 요즘 말로 하면 mindfulness)를 굳혔다. 대학생이 되었다. 당시 대학생은 혜택받은 계층이었다. 같은 또래 10명 중 1명에서 1.5명 비율로 대학생은 아주 적었다. 대학생이 될 정도의 부모님을 두었으니 고마울 뿐이다. 이과생 대학생이 되자마자 나는 문과생들과만 놀았다. 불교 관련 ‘혜명반’과 탈춤추는 ‘민속문화연구회’라는 동아리에 들면서 나는 동아리 사람들과 내내 붙어살았다. 집에서 아침 5시 반에 나와서 밤늦까지 학교에서 생활했을 정도다.

仁의 시대


그러면서 문과 기질의 언어들을 내 몸에 많이 장착시켰다. 그 사이 휴학도 하고 군대도 갔다오고 대학원 입시 공부도 했다. 30살이 되면서 결혼도 하고 늦은 나이 32살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이때부터 나는 참을 忍 자 대신에 어질 仁 자를 빈 종이에 가득 쓰기 시작했다. 忍 자 보다는 仁 자가 나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도덕적 仁이 아니라 경제적 仁의 의미를 스스로 구축했었다. 사실 仁 자는 어질 仁자가 아니라 씨앗 仁자가 먼저 나에게 각인되었었다. 아버지가 천식으로 민간 약제를 자주 드셨는데 그중 하나가 행인杏仁(살구씨)이었다. 살구씨를 가루로 내서 만든 약이다. 그래서 仁은 어질 仁보다 씨앗 仁으로 어린 나에게 기억된다. 어질 仁도 좋고 씨앗 仁도 좋다. 마음이 흩어질 때 열심히 仁자를 빈 종이에 써댔다. 혼자서 독일에 체류하던 시절, 한국에서 순덕이가 보내온 소포 포장지를 조심스럽게 뜯어내어 재활용하곤 했는데, 그 누런 포장지에 “仁”자를 크건작건 삐뚤빼뚤 가득 채웠다. 그럭저럭 10년을 보내고 원주에 정착했다.

人의 시대


월급 제대로 받는 선생으로서 40대가 시작되었다. 이후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인자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나 혼자 감당해야 할 仁 자보다 관계적 人 자가 더 문제되었다. 40대 중후반 관계 속의 사람 관계가 어려웠고, 더 큰 문제는 人의 관계를 잘 풀어가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人을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어떤 때는 人의 관계 속에 내가 파묻힐 정도였다는 것이 진짜 나를 힘들게 했다. 人이 이렇게 중요했지만, 어렸을 적 “忍의 시기”와 30대 “仁의 시기”와 달리 빈 종이에 人을 새겨 넣은 적은 없었다. 마음으로만 생각했지, 종이에 쓴 적은 없다는 뜻이다. 구름 위에, 파도 이랑에, 내 자동차 악셀 발판에, 삼겹살 불판과 그리고 웅성대는 타인에게 人자를 내 마음으로 기입했을 뿐이다. 인은 내 안에 기입되질 못하고 그대, 사물과 당신들 속에 파동으로만 기입되었을 뿐이다. 아무도 그 기입을 알아차리는 이 없다. 당연하겠지.

因의 시대


이제 노인이 되었다. 선생질도 그만하고, 지긋지긋한 학교행정도 그만하고, 학회 일도 그만하고, 사회단체 일도 그만하고, 논문제출에 시달리는 것도 그만이다.글쓰기도 이런 글처럼 자유롭게 쓴다. 일상도 마찬가지다.이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나는 천혜의 복을 받은 거다.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누구에게로부터” 감사한 거냐고 혹시 누가 묻는다면 그런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감사한 나의 마음이 전부 다다. 사람만이 아니라 사물 모든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은 실은 최근에 나를 변하게 한 모습이다. 나에게서 사람人의 관계가 사물物의 관계로 넓혀졌다는 점이다. 인人의 관계 네트워크가 물物의 관계성으로 확장되는 변화를 나는 "因”으로 해석한다. 한자로 말해서 "말미암을" 인因 자다. 인因은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이며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인因은 인과론할 때 인因이지만 현상적으로 원인과 결과라는 끈으로 결코 보이지 않으며 그렇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실제로 인因은 우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너무 복잡해서 그렇다. 불교의 인연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인연의 인因을 '씨앗'에 비유하고 인연의 연을 씨앗이 자랄 수 있는 영양분같은 환경으로 비유하고, 인과의 과를 그렇게 자라서 맺은 열매에 비유하곤 한다. 그런 불교 식 인因의 비유는 고대 한자 상형 어원과 무관한 비유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유로서는 아주 흥미로운 것이고 앞서 말한 어질 인仁 혹은 씨앗 인仁과 연결될 수 있을 듯하다. 아직 생각 안 해 봤지만 그 연관성을 한번 찾아봐야겠다. 인因의 차원에서 인과와 우연은 같다. 인은 양적인 세계의 인식론과 거리가 멀어서 인공지능이 아무리 확장되어도 인의 세계를 모사하기 어렵다. 인因의 세계는 인간이 주인이 아니라서 영혼같은 것도 없으며 인간과 무관하게 차갑고 건조한 흐름만 있지만 , 다행히 인간은 그 안에서 우연히 발생한 찰나의 소용돌이를 부여잡고 살아갈 수 있다. 그거나마 너무 다행이다. 나는 이제 노인이 되었고, 노인이 되어서 因의 폭과 너비를 조금이나마 엿보고 싶다. 因은 스스로를 보여주지 않지만 말이다. 살짝 엿볼 수만 있어도 된다. 因을 잘 엿보면 참을 忍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니고 어질 仁의 품덕에 눌릴 필요도 없고 人이라는 관계에 파묻힐 필요도 없다. 엿보다가 생은 끝난다.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 더 소중한 감사함이다. 너무 넓고 깊어서 누구라, 무엇이라 할 수 없지만 그 인연의 인因의 실재는 장구하고 광대하다. 현상적으로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너무 얽혀 있어서 내 눈으로는 알아차릴 수 없다.
키워드: 기입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