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무직


스피노자(1632~1675)에서 신(실체 혹은 자연)은 그 자체로 자연이기도 하고 자연의 깊이를 거의(유한도 많음) 무한으로 만든 단일 실체입니다.

그 깊이가 하도 깊어서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

다행히 인간에게 드러내 보이는 두 가지 모습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정신과 물질입니다.

정신(마음)과 물질(몸) 말고도 다른 양상들이 많을 수 있다는 점을 내포합니다.

더 나아가 말하자면 이 세상의 그 많은 개별자(개체)들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무수히 다양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래된 에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영상이 떠오릅니다.

일본어로는 센토치히로노카미가쿠시 [千と千尋の神隠し]로 적습니다.

그 제목 그대로 말해서 신이 깊이 깊이 숨겨 놓아 쉽게 찾지 못하여 행방불명된 천심(千尋천심; 너무 깊어서 헤아리지 못함)의 이야기를 그린 에니입니다.

치히로라는 이름이 너무 길어 신이 외자인 천(센)으로 바꾸어 놓은거죠.. 센과 치히로는 동일 인물이죠.

이런 내러티브를 안고 제가 만든 음악을 유투브에 올린 거 있습니다.



심심풀이 삼아 들어보세요. 여기 누르시면 보입니다. https://youtu.be/u1K1tyHms1k?si=G7jCzMZ4IzhiU-zF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은 동일체입니다. 스피노자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자연학적 측면에서 당연한 추론입니다.

단지 근대 형이상학은 몸과 마음, 물질과 정신, 자연과 인간 사이를 넘나들 수 없는 분절 상태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분절되고 단절된 이분법을 가로질러crossborder traffic 연결해야 한다는 라투르의 주장은 원래 얽혀있던 것을entangled 회복해야 한다는 현실 명제에 기반합니다.(브뤼노 라투르(황장진) 2023, 존재양식의 탐구, 근대인의 인류학.)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라기 보다 현실 존재의 특징인데요.

얽혀있음의 상태가 너무 복잡하고 깊어서 단순히 인식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 난제는 우리가 제도의 관습과 언어의 습관에서 탈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외의 통로에서 그 탈출 메뉴얼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불교 소승의 설일체유부와 대승의 중관론인데, 그런데 그거 너무 어려워요.

그대신 정제두에서 박은식에 이르는 조선 양명학에 매뉴얼이 적혀있단 말입니다.

더 이상의 이야기 전개는 제가 하고 싶은 글쓰기에 담으려 합니다. 언제 가능할 진 잘 모릅니다.


블로그 목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