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학의 역사와 의학교육의 도입가능성

진화의학의 역사와 의학교육의 도입가능성



【주요어】 진화론, 진화의학, 질병취약성, 신체관, 의학교육, 인문의학 

【요약문】 이 논문의 방향은 진화의학의 기초와 역사를 분석하여, 진화의학의 역사주의적 인식론과 임상의학의 기능주의적 방법론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논거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하여 먼저 진화의학의 토대인 진화생물학의 역사를 먼저 기술한다.

우선 진화론이 탄생하게 된 19세기 초에서 중엽까지 발흥된 진화 개념의 역사를 서술한다.

둘째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정립된 진화론 자체를 진화의학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정리한다.

셋째 1859년 󰡔종의 기원󰡕 출간 이후 진화론이 사회적, 의학적으로 어떻게 굴절되어 적용되는지를 분석한다. 진화론이 사회적으로 왜곡되어 적용된 것이 20세기 초, 전 세계를 휩쓴 우생학이었으며, 의학적으로 굴절되어 해석한 것이 의학적 다위니즘임을 이 논문에서 논증한다.

넷째 진화론이 의학에 굴절되어 적용된 시기였던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의 시기를 벗어나서 1990년 이후의 현대 진화의학으로 발전된 인식론적 토대와 의학적 내용을 기술한다.

마지막으로 현대 진화의학이 왜 임상의료 현장에서 그리고 의과대학 교육커리큘럼에서 배제되고 있는 이유를 분석한다.

이 논문은 궁극적으로 진화의학을 정확히 이해함으로써 진화의학의 임상적용 범위와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4. 현대 진화의학: 1990년대 이후

1) 진화의학의 질문과 토대, 그리고 정의
윌리엄스와 네시에 의해 현대 진화의학이 학문적으로 범주화되었다. Williams and Nesse(1991)
우생학의 여파로 사라진 의학적 다위니즘은 진화론의 중심 개념인 변이와 적응 그리고 선택의 개념을 잘못 이해했다. 의학적 다위니즘은 우생학의 사유구조에 매몰되어 신체의 변이다양성과 환경의존성을 간과했다. 진화론에서 현대종합설이 확고히 정착하면서 진화 메커니즘이 자연선택 외에 격리(migration)와 표류(drift) 및 돌연변이 등의 다양한 요소들로 되어 있다고 인정되었다. 진화 현대종합설의 진전으로 진화론은 유전학, 환경인류학, 미생물학, 분자생물학과도 상보적 관계임을 확인하였다. 마찬가지로 진화의학도 학제간 학문으로 타학문과의 종합을 통해 더 나은 임상을 기대할 수 있었다.

1절에서 언급했듯이 현대 진화의학은 윌리엄스와 네시 Williams and Nesse(1991), Nesse and Williams(1994)
이월드, Ewald(1996)
맥과이어와 트로이시, McGuire and Troisi(1998)
스턴즈, Stearns(1999)
트리베이던 Trevathan et al.(1999, 2007)
등에 의해 정착되었지만, 네시 이전에 이미 진화론을 통해 해석한 의학 연구자들이 많다. 그들은 현대 진화의학의 선구자로 볼 수 있다. 특히 감염성 질병을 연구한 이월드와 진화인류학적 사유를 도입하여 대사성 질병을 연구한 이튼의 연구 Eaton(1990)
는 말 그대로 선구적이다. 그리고 진화의 입장에서 질병의 기준을 구획한 듀보(Renē Dubos)의 연구는 인문의학의 중요한 입문서이다. Dubos(1965)

진화의학은 다윈의학이라고도 하는 이유는 다윈 진화론의 자연선택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신체와 그 기관들의 세포와 유전자에 이르는 모든 형질은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형질 소산물이라는 개념이 진화의학의 출발점이다. Zampieri(2009), p.13.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처음으로 던진 사람이 있다. 그런 자연선택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 몸이 질병에 취약한지를 묻는 질문이다. 그 질문을 처음 던진 사람은 윌리엄스였다. Williams and Nesse(1991)

이 질문 자체는 진화의학을 범주화로 이끈 획기적인 계기였다. 진화의학에서 신체는 진화의 산물이므로, 인간 전체에 공유된 공통된 형질이 존재한다. 장구하게 지나온 시간에 적응되어온 형질들은 급격히 변화한 새로운 환경에 충돌될 수밖에 없었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런 충돌이 질병의 원인이며, 병증 현상이다. 결국 인간종 모두가 질병에 취약한 성질을 왜 공유하게 되었는지를 질문하는 것이 진화의학의 기초다.

이상의 질문을 토대로 진화의학은 다음처럼 정의할 수 있다. 진화의학은 우리 신체가 적응진화의 소산물이라는 진화론적 인식을 기반으로 인간의 질병과 병리적 증후군의 기원과 원인을 이해하여 더 나은 치료와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임상과 이론 체계이다.

2) 진화의학의 인식론적 관점
1990년대 이후 진화의학 저서를 낸 네시, 스턴즈, 트리베이던과 윌리엄즈의 진화의학은 학자들마다 연구범주의 차이는 있었지만, 이들 모두 질병을 이해하는 인식론적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진화의학을 해석하는 그들의 공통된 인식론은 다음과 같다.

(1) 진화의학은 질병을 인식하는 본질론적 관점을 거부한다. 그 인식론적 의미는 질병원인을 근연관계(proximity)로만 보는 기능주의적 인과론을 넘어서 있다는 것이다.

(2) 질병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모종의 신체형질은 특정 대상(object)이 아니라 상황조건에 맞춰가는 사건(event)의 구조를 갖고 있다.

(3) 개인의 특이성은 예외적 요소가 아니라(exception), 예상범위 안에 있는 잠재적 가능성의 요소이다(expectation).

(4) 진화의학은 특정분야를 지칭하는 의과학적 분류가 아니라 의학 전체를 조망하는 새로운 인식론적 안목에 해당한다. Stearns(2012), p.4305.

(5) 자연의 귀납적 토대를 기초로 환경의존적 질병 인식론을 가지고 있다. 이런 관점을 킨케이드는 의학적 자연주의(medical naturalism)라고 했다. Kincaid and Mckitrick(2007), p.35.

의학적 자연주의는 병리적 증상을 자연상태에서 추측가능한 인과적 설명범주이다. 의학적 자연주의는 진화생물학, 분자생물학, 인류학과 생태학 등의 자연과학과 당대의 문화적 풍토 혹은 세계관을 포괄하여 질병과 건강의 개념을 해석한다. 이와 다르게 앞서 논의한 의학적 다위니즘은 대체로 질병의 실체를 수용하며 질병을 준거하고 인식하는 절대적 기준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킨케이드는 의학적 다위니즘의 철학적 기반을 의학적 실재론(medical realism)이라고 불렀다.(Kincaid and Mckitrick 2007, p.35)

의학적 실재론이란 질병을 정의하고 설명하는 단일한 의학적 사실이 있음을 믿는 존재론적 이념이다. 의학적 실재론에서 의학적 판단은 참 혹은 거짓으로 판명될 수 있는 사실적 명제라는 주장을 포함한다.


3) 진화의학의 존재론적 이해

진화의학은 다음과 같은 존재론적 이해를 통해 신체와 질병을 이해한다.

(1) 장구한 진화사를 통해 이미 오래 전에 적응된 신체와 현대인의 신체 환경 사이에는 일치될 수 없는 괴리와 차이가 있다. 진화론의 용어로 다시 말한다면 장구한 진화시간 동안 표현형 형성에 작용했던 적응환경에 비해 현대인은 전혀 다른 섭생환경과 물리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진화과정을 통해 누적적으로 형성된 해부학적․생리적 진화형질과 제한(constraints) 형태는 급격히 새로워진 환경조건에 맞추지 못하여 질병이 생긴다는 것이 진화의학의 질병원인론이다. 이러한 불일치에 노출된 신체의 질병 요인은 모든 인류에 공통적으로 잠재되어 있다.

(2) 질병에 대한 진화론적 이해의 핵심은 자연선택이 건강이나 장수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고 포괄적 번식 적응도를 최대화하도록 작용한다는 사실은 진화의학의 질병존재론에서 가장 중요하다. Greaves(2007), p.215.

다시 말해서 자연선택은 후손 생식의 적응도를 최대화하도록 작용하는 것이지, 개인의 건강이나 장수를 최대화하도록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Gluckman and Beadle(2009)

(3) 신체의 건강과 질병을 구분하는 절대적 기준이 없다는 인식론적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강신익(2007)

즉 특정한 형질이 ‘정상’이라는 기준이 없다는 것을 진화의학에서는 강조한다. Zampieri(2009), p.27.

(4) 표현형질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고 그 차이는 당면한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발생학적 환경이 누적된 결실이다. 인간의 특수한 계통사와 발생학적 생물사는 질병에 대한 감수성에 영향을 준다는 점은 진화의학의 중요한 존재론적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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