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기, 통합의 학문적 실험
서평, 아카필로 2호 수록 2001년 1월
권오영 외 <<혜강 최한기>>에 대한 서평

최한기, 통합의 학문적 실험



1. 인문학의 위기를 최한기도 느꼈다

80년대 후반부터 우리 글쓰기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잦더니, 몇 년 전부터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표제어를 갖고 지나온 우리 인문학의 상황에 대한 반성 및 비판의 분위기가 커져 왔다. 그런데 지금 우리 글쓰기와 인문학에서 그런 자성의 바람에 의해 변화된 것이 정말 있는지를 묻는다면 자신있게 답을 내릴 수 없다. 바람을 일으킨 비판적 지식인들의 소리는 여전히 소수의 주장으로만 치부되었고, 어느 정도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주기는 했지만 인문학 전체의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인문학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당장의 가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수의 목소리가 논쟁과 토론거리 수준으로 후퇴하였고 여전히 다수 개개인의 인문학자들의 실질적인 변화를 유도하지 못했다.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자 스스로가 자신의 나태와 관행을 벗겨내지 못했다는데 그 원인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인문학자가 속해 있는 사회와 역사의 틀이 갖는 관성적 요인이 상존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단지 사회와 역사의 관성을 벗겨내어야 할 주체가 바로 인문학자인데 그 스스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관성의 틀을 향유하고 있는 인문학자들, 구체적으로는 대학에서 인문학 관련 강의를 하는 나태한 교수들이 여전히 많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오늘의 위기라고 하는 상황의 책임은 개인 인문학자와 사회적 요인이 함께 저야 한다.

그 동안 있어 온 인문학 위기의 진단은 다양 각색이지만, 그래도 원인들을 거시적으로 정리해본다면, 첫째 학문의 기작인 이성적 사유가 그 스스로 또 다른 권력을 독점하고 있으며 동시에 학자들 역시 학문의 권력을 휘둘러 왔다는 점이며, 둘째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아무런 고민 없이 틀에 박힌 대로 전통과 현대 혹은 전통사상과 외래문물이 그대로 전근대성과 근대성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는 점, 셋째 학문의 세밀한 분화가 가치중립성이라는 껍데기를 쓰고 나와 역사를 상실하고 사회와의 대화를 단절하고 있으며, 학문의 직업화가 가져다준 타학문과의 고립이 만연되고 있다는 점, 넷째 근대 이후 우리의 특수 상황인 일제와 미국문화의 종속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이다.

이런 인문학 위기의 진단은 그에 따른 처방이 있어야 하는데, 그 동안 진단은 많이 있어 왔지만 실제적인 처방이 미약했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런데 놀라울 일이 하나 있는데, 이미 150여 년 전에 크게 알려지지 않은 한 조선인 학자에 의해 위와 똑같은 진단과 처방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최한기였다.

2. 우리는 시대적 승순承順을 해내지 못했다

나는 칠 팔 년 전에 우연히 최한기의 글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내 전공은 자연철학인데, 과학철학의 역사라는 책을 번역한 일이 있어서 그 안에 등장하는 허셀(J. Herschel, 1791-1871)과 유웰(W. Whewell, 1794-1866)을 보다가, 조선 후기 최한기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뉴턴의 만유인력을 소개하는 그의 기 개념이 조아스럽기는 하지만, 당시 조선사회의 풍토에서 볼 때 매우 선진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최한기를 처음 접할 당시 나의 관심은 콰인(Quein)의 번역불가능성(통약불가능성) 테제와 관련하여 두 문화양식 혹은 서로 다른 두 언어 사이의 일대일 번역이 가능한가라는 문제였다. 개인적으로는 보편적 인간성의 존재를 믿고 있으면서도 개념상의 번역은 객관적이고 환원주의에 의한 일대일 번역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런 입장을 갖고 최한기를 접하면서 만유인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을 설명하려는 그의 기 개념이 전통적인 기 개념과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설명개념으로서 기를 도입하여 서구과학에서 말하는 빛의 입자적 성격을 기로 번역하였다. 그 와중에서 그의 의도와 달리 빛의 파동적 성격이 부각되었다. 현대과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의 기 개념은 장(場, field) 개념과 연관되어, 마치 처음에 있었던 설명의 오류가 나중에 가서 우연적인 개념의 일치를 가져온 사례로서 이해될 수도 있다. 문제는 최한기의 서구과학 수용방식에서 생길 수 있는 몇몇 오류는 최한기 개인의 학문차원이 아니라, 문화배경이 다른 두 상징체계 사이의 완전한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었다는 점이다.

최한기의 학문적 자극은 분명히 말해서 중국어로 번역된 서구과학의 문서들에서 찾을 수 있다. 같은 외부의 자극이라도 수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반응이 나타나듯이 서구과학에 대한 최한기의 반응은 최한기의 삶의 역사 속으로 용해되어 나타났다. 그는 당연히 유학의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으며, 전통사상과 외래문화의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나 그는 갈등의 구조 속에 머물지 않았다. 첫째 최한기는 문화의 갈등에서 수세적인 입장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주자학의 권력구조에 당당히 맞서 있었다. 둘째 전통사상과 서구과학에 대하여 당시의 다른 유학자와 달리 일방적인 우열 판단을 하지 않았으며, 양쪽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가려 자신의 것으로 봉합하였다. 셋째 그는 자연학의 문제를 자연에 국한시키지 않고 인간학에 적용하였다. 자연학과 인간학을 하나의 테두리 안에 놓는데서 생길 수 있는 확대해석의 문제를 그는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에 따른 철학적 기반을 심각하게 숙고하였다. 자연학과 인간학을 하나의 테두리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그는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기술과학을 포괄하는 학제간 연구의 범례를 제시하였다. 넷째 그는 학문의 종속을 가져 올 수 있는 중국의 전통과 서구의 과학을 무작위로 수용하지 않았으며 그 시대와 역사에 걸맞는 취사선택과 사회적 요청에 어느 정도 부응하였다.

물론 이러한 최한기의 생각이 그대로 당시 사회상에 적용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학문이 100년 후에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언을 했는데, 실제로 100년이 지나서야 최한기의 학문이 조금씩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최한기의 고민은 시대적인 문제에 대하여 실효성 있게 변용되지 못했다. 최한기의 기학이 보여 주는 이론적 어설픔이 분명히 있지만, 그것은 최한기의 잘못이 아니라 시대적 승순承順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 시대 학자의 잘못일 수 있다.

3. 주자학과 다른 길을 걸었다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마침 얼마 전에 책으로 나온 혜강 최한기(청계,2000년7월)를 만났다. 이 책은 동양학자 다섯 분의 공동집필로 쓰여졌다.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혜강의 저서를 새로이 소개하는 것에서부터 주자학과 신학문 사이에서 일어났던 최한기의 이론적 모순 등을 비판하는 것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1000권(300책)에 이르는 최한기의 수많은 자료 중에서 최근 발굴된 자료들을 정리한 꼭지는 최한기의 여변의 학문적 관심이 기학과 어떻게 연관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내용이다. 특히 보편의 학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당시 조선의 혼란스런 상황에 대하여 자문을 해주는 최한기의 모습은 다른 연구서에서 볼 수 없었던 내용들이었다.

최한기 연구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측면은 그의 방대한 저서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자서전적인 학문연구의 추이과정을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활活動운運화化의 기학이 최한기 사상의 중심인 것은 이미 알려진 것이지만, 그의 중심된 기학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에 대한 자세한 논거는 부족한 편이었다. 기존 논의에서 최한기 기학 성립의 배경은 주로 전통 성리학과 서구과학의 조융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은 당연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의 기학 성립의 배경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황제내경의 우주론과 방법론이다. 최한기는 주자학과 같은 전통 형이상학은 물론이거니와 전래의 의료풍속 등도 허학虛學이라 하여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의학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내경의 우주론적 사유를 자신의 기학 구조에 도입하였다. 이 책의 공동필자 중에서 신원봉 교수는 그 부분을 지적하였다. 신 교수는 최한기 운화사상의 한 축인 신기神氣론과 내경 영추 편의 장부론을 비교 인용하여 인체의 장부는 신기에 의해 좌우되고 변통變通된다고 보았다. 특히 내경 素問에서 말하는 정精, 혈血, 신神의 관계로부터 신체 장부와 신기의 관계가 유래되었다고 신 교수는 쓰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첫째 최한기가 음양오행론을 허학이라 하여 크게 비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의학의 사유구조를 어떻게 수용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최한기는 음양오행론 그 자체보다는 음양오행을 반성 없이 적용하는데 문제를 제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의료에 적용되는 음양오행과 내경에 내재된 세계관을 접근하는 방법론적 정신을 엄격히 구분하였다. 예를 들어 내경의 방법론적 정신을 기술해보면 그 구분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내경의 방법론적 정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철저한 인과율을 따른다. 둘째 주술이나 귀신을 인정하지 않는 합리주의 정신이다. 셋째 자연의 운행질서가 내재한다는 자연법칙주의를 갖는다. 넷째 물질적 경험주의이다. 다섯째 물질과 정신, 신체와 자연을 하나의 연속적인 관계로 보는 자연주의를 표방한다. 이러한 내경의 방법론적 정신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어떻게 최한기 기론과 그렇게 같을 수가 있는지 감탄할 수밖에 없다. 최한기에게 있어서 황제내경을 다룬 부분은 실제로 많지 않다. 그러나 최한기 기학 전반을 관통하는 기 철학의 핵심은 내경의 방법론적 사유와 동일한 지평 위에 놓여 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또 한가지 내경 사상과의 동질성을 추측할 수 있다. 내경에서는 우주의 운행방식과 사회의 운행방식 인간의 운행방식, 그리고 심리의 운행방식이 모두 동일한 위상(동형성, isomorphie)을 갖는다고 본다. 이와 비슷하게 최한기는 대기운화大氣運化와 통민운화統民運化 그리고 일신운화一身運化의 질적인 동형성을 강조한다. 운화론에서는 심리의 운행방식은 빠져 있지만 심리 구조는 운화에 대한 추推와 측測을 할 수 있는 그런 소이연所以然이 되는 근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최한기는 활동운화 뒷면에 있는 소이연의 구조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부정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종교나 형이상학으로 빠지는 연역적 소이연으로서의 심리를 부정하지만, 추론(일반화 추론)과 (일반법칙의) 사례적용의 구실을 하는 귀납적 소이연으로서의 심리를 매우 중시한다. 이런 구조를 이해한다면 최한기의 기학이 전통의 경학과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경학은 선진유가에서부터 내려오는 사랑의 차이를 정형화하는 길을 걷는다. 주자학은 냇가에 굴러있는 돌맹이에 대한 사랑, 저기 소나무에 대한 사랑과 길거리에 있는 강아지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각자 그 표현방식과 사랑해야만 하는 내재적 근거부터가 다르다. 나아가 형제에 대한 사랑과 친구에 대한 사랑, 부부간의 사랑, 임금에 대한 사랑이 각각 다르고 또한 달라야만 한다. 그러나 최한기는 이와 같은 차별의 사랑방식으로는 기의 전일적 구조를 표현할 수 없었다. 본연지성本然之性과 氣質之性을 나누는 주자학의 내재적 의미는 인간만이 향유하고 인간이라면 반드시 준거해야할 가치의 고유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최한기처럼 사랑의 구획을 무시한다면 인간만의 가치를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최한기를 인간의 고유한 가치를 부정한 사람으로 이해할 수 없다. 기의 보편성을 강조했다고 해서 인륜의 특수성을 부정했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의 승순承順 개념은 오히려 유가와 도가의 대립에서 파생되었다고 보아도 좋다. 모든 것이 차별 없이 무조건 같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큰 기의 유행流行에 어긋나지 않게 작은 기의 추측을 이뤄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의 추측론은 당시 서구과학에서 영항 받은 논리적 사유와 형이상학이 아닌 형질적인 방식으로 우주론을 접근하는 변통의 세계관을 함께 내포한다.

4. 반대는 모순이 아니다

형질적 방식의 접근태도를 잘못 이해하면 유물론적 기계론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최한기의 기학은 단순한 기계론이 아니다. 서구적 기계론은 단순 인과율에 의한 기계론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한기의 기계론은 복잡 인과율에 의한 모델이다. 복잡 인과율이란 원인과 결과의 끈이 너무 멀고 우회적이며 중층적이어서 쉽게 인간의 인식범위 안에 포착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인과적 질서가 내재화 되어 쉽게 이성인식으로 갈무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재된 질서구조는 하나하나씩 밝혀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과학의 성과라고 본 것이 최한기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성과는 간단히 이뤄지지 않는다. 자연의 구조는 기계론적이지만 매우 복잡하고 블랙박스의 흔적이 강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리 동양학자라도 서구적인 개념과 한자어로 번역된 개념을 혼동하는 사람은 최한기 기학의 기계론적 모델을 마치 기계론과 유기체론이 제대로 융합하지 못하고 어지럽게 혼재된 것으로 느끼게 된다. 이렇게 느끼다 보면

“근대 과학기술에도 충실하지 못하고 전통적인 유연한 유기체론적 세계관에도 충실하지 못한 참으로 어중간한 신크레티즘에 머물 수도 있다”

는 표현을 쉽게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시 최한기가 읽은 기계機械라고 번역된 메카닉스mechanics와 최한기가 이해한 기계의 뜻은 다르다. 최한기는 서구과학을 원어로 읽은 것이 아니라 중국어 번역으로 읽은 것이기 때문에 한역된 기계를 우주의 질서가 내재화된 틀거리 혹은 에너지보존법칙이 성립되는 우주의 큰 그릇器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래서 최한기에게 오류가 있다면, 그 오류는 서구과학을 수용할 때 자료의 미흡함 혹은 취사선택의 오류로 인한 서구과학의 이해부족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요즘 이해하는 의미의 기계론과 유기체론의 ‘어중간한 신크레티즘’이라고 할 수 없다.

최한기는 음양오행 자체가 아니라 음양오행을 방법론으로 도용하거나 잘못 적용하는 것을 철저하게 부정하였다. 최한기가 음양오행을 부정할 때 그 부정의 맥락은 이론적인 측면보다 역사적인 측면이 강하다. 당시 음양오행은 한창 주술적 측면으로 연관이 많이 되던 때이다. 그래서 그는 음양오행의 적용에서 오류를 일으키는 주술과 형이상학을 위장한 학문의 권력구조와 허학을 익히 알고 있던 터이다. 예를 들어 <기학>에서 보듯 그는 오운五運 육기六氣의 학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운육기설이 그 이론의 근원지인 내경 소문의 의도와 달리 인간 대소사를 점치고 큰 기의 유행流行을 흉내내는 그런 주술로 잘못 적용되어 가는 시대적 오류를 그는 강하게 느낀 것이다. 그래서 최한기는 음양오행의 주술적 적용에 대한 강한 부정이 음양오행의 우주론 전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비춰지게 되었다.

결국 최한기의 기학을 당시의 주류 학문과 대립적인 관계로 이해할 때 최한기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서구과학의 영향을 받은 최한기의 기학이 물질적 유형성과 기의 통일성을 강조하고 그리고 기의 탈가치적 성격 때문에 그의 기학을 성리학과 모순된다고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해석이다. 불행하게도 <기학의 이중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이 책의 둘째 꼭지에서는 전반적으로 이런 해석으로 일관되어 있는 것 같다. 바지 색깔이 흰색이면서 동시에 검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지만 흰 바지와 검정 저고리는 모순이 아니다. 이와 유사한 범주오류(category mistake)는 학자들도 자주 위배하는 논리학의 정서적 함정이기도 하다. 최한기 해석에서 이런 함정에 빠지게 될 때 다음과 같은 글을 쓰게 된다.

예1) “성리학이 옳은지 아니면 근대 과학이 옳은지는 영원히 열린 물음일 뿐이다”
예2) ”그가 열광적으로 추구했던 유물론적 과학은 다시금 유물론적 과학을 넘어서는 무형의 형이상학적인 어떤 것에 의해 테두리 지워지고 있다. 과학이 형이상학을 부정하면서도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욕구에 의해 또 다시 형이상학을 불러들이는 것과 같은 인간 사유의 운명을 혜강의 기학이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3) “그는 전통적인 경학마저 내동댕이치고 본받을 만한 전통의 모범이 없어 혼자서 ‘학문의 혁명가’와 ‘학문의 창업 군주’라는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바로 이 때문에 오늘날 혜강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으나 또한 바로 이 때문에 그의 사유는 사제私製 철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조잡한 신크레티즘의 혐의를 벗기 어려운 것이다”

남의 글을 앞 뒤 빼고 아전인수격으로 인용하는 것은 남을 헐뜯을 때 흔히 사용하는 글쓰기방식이어서 나도 미안함이 있다. 그러나 ‘성리학과 과학’, ‘과학과 형이상학’, 또는 ‘전통과 혁명’과 같이 모든 것을 대립적으로 해석하여 남의 것과 나의 것을 일부러 멀리 떼어놓는 방법도 역시 남을 헐뜯을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5. 통합의 학문적 실험은 계속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책에서 다룬 새로운 최한기 자료발굴에 대한 시대맥락적 접근은 나에게 많은 공부법을 제공해 주었다. 다섯 분이 함께 집필한 것이어서 책 전체에 대한 일괄적인 평을 쓰기가 곤란했다. 그러나 이 책은 최한기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독자에게 선물하였다. 새로운 글쓰기의 범례로서 최한기를 다루는 접근법은 우리 시대가 정말 요청하는 공부법이라고 생각했다.

동양학에는 방법론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경우는 동양학자 스스로도 그런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방법론이란 대개 서구과학의 잣대에서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빨리 눈치채야 한다. 물론 최한기를 동양학의 범주에만 넣을 수 없다. 한문으로 글을 썼다고 해서 모두 동양학이 아닌 것과 같다. 동양의 문헌과 서양의 문헌을 엄격히 구분하여 골라 읽게 하거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인문학 교육이라면 영원히 동양과 서양은 만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동양과 서양을 무차별하게 종합하는 것도 또 다른 주술 학문이 될 수 있다. 이와 연관하여 이 책의 마지막 꼭지에서 다룬 방법론적 접근태도는 매우 중요한 고민을 우리에게 던져 주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말했듯이 혜강 연구는 열린 미래 인문학의 한 과제이다. <끝>


" style="width:100%; height:500px;"> 2001 서평 : "통합의 학문적 실험" , <혜강 최한기> 서평, 아카필로 2호 수록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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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자 최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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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의 학문적 실험

1. 인문학의 위기를 최한기도 느꼈다

80년대 후반부터 우리 글쓰기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잦더니, 몇 년 전부터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표제어를 갖고 지나온 우리 인문학의 상황에 대한 반성 및 비판의 분위기가 커져 왔다. 그런데 지금 우리 글쓰기와 인문학에서 그런 자성의 바람에 의해 변화된 것이 정말 있는지를 묻는다면 자신있게 답을 내릴 수 없다. 바람을 일으킨 비판적 지식인들의 소리는 여전히 소수의 주장으로만 치부되었고, 어느 정도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주기는 했지만 인문학 전체의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인문학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당장의 가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수의 목소리가 논쟁과 토론거리 수준으로 후퇴하였고 여전히 다수 개개인의 인문학자들의 실질적인 변화를 유도하지 못했다.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자 스스로가 자신의 나태와 관행을 벗겨내지 못했다는데 그 원인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인문학자가 속해 있는 사회와 역사의 틀이 갖는 관성적 요인이 상존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단지 사회와 역사의 관성을 벗겨내어야 할 주체가 바로 인문학자인데 그 스스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관성의 틀을 향유하고 있는 인문학자들, 구체적으로는 대학에서 인문학 관련 강의를 하는 나태한 교수들이 여전히 많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오늘의 위기라고 하는 상황의 책임은 개인 인문학자와 사회적 요인이 함께 저야 한다.

그 동안 있어 온 인문학 위기의 진단은 다양 각색이지만, 그래도 원인들을 거시적으로 정리해본다면, 첫째 학문의 기작인 이성적 사유가 그 스스로 또 다른 권력을 독점하고 있으며 동시에 학자들 역시 학문의 권력을 휘둘러 왔다는 점이며, 둘째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아무런 고민 없이 틀에 박힌 대로 전통과 현대 혹은 전통사상과 외래문물이 그대로 전근대성과 근대성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는 점, 셋째 학문의 세밀한 분화가 가치중립성이라는 껍데기를 쓰고 나와 역사를 상실하고 사회와의 대화를 단절하고 있으며, 학문의 직업화가 가져다준 타학문과의 고립이 만연되고 있다는 점, 넷째 근대 이후 우리의 특수 상황인 일제와 미국문화의 종속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이다.

이런 인문학 위기의 진단은 그에 따른 처방이 있어야 하는데, 그 동안 진단은 많이 있어 왔지만 실제적인 처방이 미약했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런데 놀라울 일이 하나 있는데, 이미 150여 년 전에 크게 알려지지 않은 한 조선인 학자에 의해 위와 똑같은 진단과 처방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최한기였다.

2. 우리는 시대적 승순承順을 해내지 못했다

나는 칠 팔 년 전에 우연히 최한기의 글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내 전공은 자연철학인데, 과학철학의 역사라는 책을 번역한 일이 있어서 그 안에 등장하는 허셀(J. Herschel, 1791-1871)과 유웰(W. Whewell, 1794-1866)을 보다가, 조선 후기 최한기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뉴턴의 만유인력을 소개하는 그의 기 개념이 조아스럽기는 하지만, 당시 조선사회의 풍토에서 볼 때 매우 선진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최한기를 처음 접할 당시 나의 관심은 콰인(Quein)의 번역불가능성(통약불가능성) 테제와 관련하여 두 문화양식 혹은 서로 다른 두 언어 사이의 일대일 번역이 가능한가라는 문제였다. 개인적으로는 보편적 인간성의 존재를 믿고 있으면서도 개념상의 번역은 객관적이고 환원주의에 의한 일대일 번역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런 입장을 갖고 최한기를 접하면서 만유인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을 설명하려는 그의 기 개념이 전통적인 기 개념과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설명개념으로서 기를 도입하여 서구과학에서 말하는 빛의 입자적 성격을 기로 번역하였다. 그 와중에서 그의 의도와 달리 빛의 파동적 성격이 부각되었다. 현대과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의 기 개념은 장(場, field) 개념과 연관되어, 마치 처음에 있었던 설명의 오류가 나중에 가서 우연적인 개념의 일치를 가져온 사례로서 이해될 수도 있다. 문제는 최한기의 서구과학 수용방식에서 생길 수 있는 몇몇 오류는 최한기 개인의 학문차원이 아니라, 문화배경이 다른 두 상징체계 사이의 완전한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었다는 점이다.

최한기의 학문적 자극은 분명히 말해서 중국어로 번역된 서구과학의 문서들에서 찾을 수 있다. 같은 외부의 자극이라도 수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반응이 나타나듯이 서구과학에 대한 최한기의 반응은 최한기의 삶의 역사 속으로 용해되어 나타났다. 그는 당연히 유학의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으며, 전통사상과 외래문화의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나 그는 갈등의 구조 속에 머물지 않았다. 첫째 최한기는 문화의 갈등에서 수세적인 입장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주자학의 권력구조에 당당히 맞서 있었다. 둘째 전통사상과 서구과학에 대하여 당시의 다른 유학자와 달리 일방적인 우열 판단을 하지 않았으며, 양쪽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가려 자신의 것으로 봉합하였다. 셋째 그는 자연학의 문제를 자연에 국한시키지 않고 인간학에 적용하였다. 자연학과 인간학을 하나의 테두리 안에 놓는데서 생길 수 있는 확대해석의 문제를 그는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에 따른 철학적 기반을 심각하게 숙고하였다. 자연학과 인간학을 하나의 테두리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그는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기술과학을 포괄하는 학제간 연구의 범례를 제시하였다. 넷째 그는 학문의 종속을 가져 올 수 있는 중국의 전통과 서구의 과학을 무작위로 수용하지 않았으며 그 시대와 역사에 걸맞는 취사선택과 사회적 요청에 어느 정도 부응하였다.

물론 이러한 최한기의 생각이 그대로 당시 사회상에 적용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학문이 100년 후에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언을 했는데, 실제로 100년이 지나서야 최한기의 학문이 조금씩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최한기의 고민은 시대적인 문제에 대하여 실효성 있게 변용되지 못했다. 최한기의 기학이 보여 주는 이론적 어설픔이 분명히 있지만, 그것은 최한기의 잘못이 아니라 시대적 승순承順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 시대 학자의 잘못일 수 있다.

3. 주자학과 다른 길을 걸었다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마침 얼마 전에 책으로 나온 혜강 최한기(청계,2000년7월)를 만났다. 이 책은 동양학자 다섯 분의 공동집필로 쓰여졌다.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혜강의 저서를 새로이 소개하는 것에서부터 주자학과 신학문 사이에서 일어났던 최한기의 이론적 모순 등을 비판하는 것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1000권(300책)에 이르는 최한기의 수많은 자료 중에서 최근 발굴된 자료들을 정리한 꼭지는 최한기의 여변의 학문적 관심이 기학과 어떻게 연관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내용이다. 특히 보편의 학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당시 조선의 혼란스런 상황에 대하여 자문을 해주는 최한기의 모습은 다른 연구서에서 볼 수 없었던 내용들이었다.

최한기 연구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측면은 그의 방대한 저서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자서전적인 학문연구의 추이과정을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활活動운運화化의 기학이 최한기 사상의 중심인 것은 이미 알려진 것이지만, 그의 중심된 기학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에 대한 자세한 논거는 부족한 편이었다. 기존 논의에서 최한기 기학 성립의 배경은 주로 전통 성리학과 서구과학의 조융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은 당연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의 기학 성립의 배경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황제내경의 우주론과 방법론이다. 최한기는 주자학과 같은 전통 형이상학은 물론이거니와 전래의 의료풍속 등도 허학虛學이라 하여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의학의 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내경의 우주론적 사유를 자신의 기학 구조에 도입하였다. 이 책의 공동필자 중에서 신원봉 교수는 그 부분을 지적하였다. 신 교수는 최한기 운화사상의 한 축인 신기神氣론과 내경 영추 편의 장부론을 비교 인용하여 인체의 장부는 신기에 의해 좌우되고 변통變通된다고 보았다. 특히 내경 素問에서 말하는 정精, 혈血, 신神의 관계로부터 신체 장부와 신기의 관계가 유래되었다고 신 교수는 쓰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첫째 최한기가 음양오행론을 허학이라 하여 크게 비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의학의 사유구조를 어떻게 수용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최한기는 음양오행론 그 자체보다는 음양오행을 반성 없이 적용하는데 문제를 제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의료에 적용되는 음양오행과 내경에 내재된 세계관을 접근하는 방법론적 정신을 엄격히 구분하였다. 예를 들어 내경의 방법론적 정신을 기술해보면 그 구분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내경의 방법론적 정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철저한 인과율을 따른다. 둘째 주술이나 귀신을 인정하지 않는 합리주의 정신이다. 셋째 자연의 운행질서가 내재한다는 자연법칙주의를 갖는다. 넷째 물질적 경험주의이다. 다섯째 물질과 정신, 신체와 자연을 하나의 연속적인 관계로 보는 자연주의를 표방한다. 이러한 내경의 방법론적 정신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어떻게 최한기 기론과 그렇게 같을 수가 있는지 감탄할 수밖에 없다. 최한기에게 있어서 황제내경을 다룬 부분은 실제로 많지 않다. 그러나 최한기 기학 전반을 관통하는 기 철학의 핵심은 내경의 방법론적 사유와 동일한 지평 위에 놓여 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또 한가지 내경 사상과의 동질성을 추측할 수 있다. 내경에서는 우주의 운행방식과 사회의 운행방식 인간의 운행방식, 그리고 심리의 운행방식이 모두 동일한 위상(동형성, isomorphie)을 갖는다고 본다. 이와 비슷하게 최한기는 대기운화大氣運化와 통민운화統民運化 그리고 일신운화一身運化의 질적인 동형성을 강조한다. 운화론에서는 심리의 운행방식은 빠져 있지만 심리 구조는 운화에 대한 추推와 측測을 할 수 있는 그런 소이연所以然이 되는 근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최한기는 활동운화 뒷면에 있는 소이연의 구조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부정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종교나 형이상학으로 빠지는 연역적 소이연으로서의 심리를 부정하지만, 추론(일반화 추론)과 (일반법칙의) 사례적용의 구실을 하는 귀납적 소이연으로서의 심리를 매우 중시한다. 이런 구조를 이해한다면 최한기의 기학이 전통의 경학과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경학은 선진유가에서부터 내려오는 사랑의 차이를 정형화하는 길을 걷는다. 주자학은 냇가에 굴러있는 돌맹이에 대한 사랑, 저기 소나무에 대한 사랑과 길거리에 있는 강아지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각자 그 표현방식과 사랑해야만 하는 내재적 근거부터가 다르다. 나아가 형제에 대한 사랑과 친구에 대한 사랑, 부부간의 사랑, 임금에 대한 사랑이 각각 다르고 또한 달라야만 한다. 그러나 최한기는 이와 같은 차별의 사랑방식으로는 기의 전일적 구조를 표현할 수 없었다. 본연지성本然之性과 氣質之性을 나누는 주자학의 내재적 의미는 인간만이 향유하고 인간이라면 반드시 준거해야할 가치의 고유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최한기처럼 사랑의 구획을 무시한다면 인간만의 가치를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최한기를 인간의 고유한 가치를 부정한 사람으로 이해할 수 없다. 기의 보편성을 강조했다고 해서 인륜의 특수성을 부정했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의 승순承順 개념은 오히려 유가와 도가의 대립에서 파생되었다고 보아도 좋다. 모든 것이 차별 없이 무조건 같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큰 기의 유행流行에 어긋나지 않게 작은 기의 추측을 이뤄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의 추측론은 당시 서구과학에서 영항 받은 논리적 사유와 형이상학이 아닌 형질적인 방식으로 우주론을 접근하는 변통의 세계관을 함께 내포한다.

4. 반대는 모순이 아니다

형질적 방식의 접근태도를 잘못 이해하면 유물론적 기계론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최한기의 기학은 단순한 기계론이 아니다. 서구적 기계론은 단순 인과율에 의한 기계론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한기의 기계론은 복잡 인과율에 의한 모델이다. 복잡 인과율이란 원인과 결과의 끈이 너무 멀고 우회적이며 중층적이어서 쉽게 인간의 인식범위 안에 포착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인과적 질서가 내재화 되어 쉽게 이성인식으로 갈무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재된 질서구조는 하나하나씩 밝혀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과학의 성과라고 본 것이 최한기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성과는 간단히 이뤄지지 않는다. 자연의 구조는 기계론적이지만 매우 복잡하고 블랙박스의 흔적이 강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리 동양학자라도 서구적인 개념과 한자어로 번역된 개념을 혼동하는 사람은 최한기 기학의 기계론적 모델을 마치 기계론과 유기체론이 제대로 융합하지 못하고 어지럽게 혼재된 것으로 느끼게 된다. 이렇게 느끼다 보면

“근대 과학기술에도 충실하지 못하고 전통적인 유연한 유기체론적 세계관에도 충실하지 못한 참으로 어중간한 신크레티즘에 머물 수도 있다”

는 표현을 쉽게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시 최한기가 읽은 기계機械라고 번역된 메카닉스mechanics와 최한기가 이해한 기계의 뜻은 다르다. 최한기는 서구과학을 원어로 읽은 것이 아니라 중국어 번역으로 읽은 것이기 때문에 한역된 기계를 우주의 질서가 내재화된 틀거리 혹은 에너지보존법칙이 성립되는 우주의 큰 그릇器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래서 최한기에게 오류가 있다면, 그 오류는 서구과학을 수용할 때 자료의 미흡함 혹은 취사선택의 오류로 인한 서구과학의 이해부족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요즘 이해하는 의미의 기계론과 유기체론의 ‘어중간한 신크레티즘’이라고 할 수 없다.

최한기는 음양오행 자체가 아니라 음양오행을 방법론으로 도용하거나 잘못 적용하는 것을 철저하게 부정하였다. 최한기가 음양오행을 부정할 때 그 부정의 맥락은 이론적인 측면보다 역사적인 측면이 강하다. 당시 음양오행은 한창 주술적 측면으로 연관이 많이 되던 때이다. 그래서 그는 음양오행의 적용에서 오류를 일으키는 주술과 형이상학을 위장한 학문의 권력구조와 허학을 익히 알고 있던 터이다. 예를 들어 <기학>에서 보듯 그는 오운五運 육기六氣의 학설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운육기설이 그 이론의 근원지인 내경 소문의 의도와 달리 인간 대소사를 점치고 큰 기의 유행流行을 흉내내는 그런 주술로 잘못 적용되어 가는 시대적 오류를 그는 강하게 느낀 것이다. 그래서 최한기는 음양오행의 주술적 적용에 대한 강한 부정이 음양오행의 우주론 전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비춰지게 되었다.

결국 최한기의 기학을 당시의 주류 학문과 대립적인 관계로 이해할 때 최한기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서구과학의 영향을 받은 최한기의 기학이 물질적 유형성과 기의 통일성을 강조하고 그리고 기의 탈가치적 성격 때문에 그의 기학을 성리학과 모순된다고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해석이다. 불행하게도 <기학의 이중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이 책의 둘째 꼭지에서는 전반적으로 이런 해석으로 일관되어 있는 것 같다. 바지 색깔이 흰색이면서 동시에 검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지만 흰 바지와 검정 저고리는 모순이 아니다. 이와 유사한 범주오류(category mistake)는 학자들도 자주 위배하는 논리학의 정서적 함정이기도 하다. 최한기 해석에서 이런 함정에 빠지게 될 때 다음과 같은 글을 쓰게 된다.

예1) “성리학이 옳은지 아니면 근대 과학이 옳은지는 영원히 열린 물음일 뿐이다”
예2) ”그가 열광적으로 추구했던 유물론적 과학은 다시금 유물론적 과학을 넘어서는 무형의 형이상학적인 어떤 것에 의해 테두리 지워지고 있다. 과학이 형이상학을 부정하면서도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욕구에 의해 또 다시 형이상학을 불러들이는 것과 같은 인간 사유의 운명을 혜강의 기학이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3) “그는 전통적인 경학마저 내동댕이치고 본받을 만한 전통의 모범이 없어 혼자서 ‘학문의 혁명가’와 ‘학문의 창업 군주’라는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바로 이 때문에 오늘날 혜강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으나 또한 바로 이 때문에 그의 사유는 사제私製 철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조잡한 신크레티즘의 혐의를 벗기 어려운 것이다”

남의 글을 앞 뒤 빼고 아전인수격으로 인용하는 것은 남을 헐뜯을 때 흔히 사용하는 글쓰기방식이어서 나도 미안함이 있다. 그러나 ‘성리학과 과학’, ‘과학과 형이상학’, 또는 ‘전통과 혁명’과 같이 모든 것을 대립적으로 해석하여 남의 것과 나의 것을 일부러 멀리 떼어놓는 방법도 역시 남을 헐뜯을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5. 통합의 학문적 실험은 계속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 책에서 다룬 새로운 최한기 자료발굴에 대한 시대맥락적 접근은 나에게 많은 공부법을 제공해 주었다. 다섯 분이 함께 집필한 것이어서 책 전체에 대한 일괄적인 평을 쓰기가 곤란했다. 그러나 이 책은 최한기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독자에게 선물하였다. 새로운 글쓰기의 범례로서 최한기를 다루는 접근법은 우리 시대가 정말 요청하는 공부법이라고 생각했다.

동양학에는 방법론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어떤 경우는 동양학자 스스로도 그런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방법론이란 대개 서구과학의 잣대에서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빨리 눈치채야 한다. 물론 최한기를 동양학의 범주에만 넣을 수 없다. 한문으로 글을 썼다고 해서 모두 동양학이 아닌 것과 같다. 동양의 문헌과 서양의 문헌을 엄격히 구분하여 골라 읽게 하거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인문학 교육이라면 영원히 동양과 서양은 만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동양과 서양을 무차별하게 종합하는 것도 또 다른 주술 학문이 될 수 있다. 이와 연관하여 이 책의 마지막 꼭지에서 다룬 방법론적 접근태도는 매우 중요한 고민을 우리에게 던져 주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말했듯이 혜강 연구는 열린 미래 인문학의 한 과제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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