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에서 대운하까지-환경위기와 생태적 자연관
 

새만금에서 대운하까지-환경위기와 생태적 자연관


공동저서, 문화와 철학. 동녁출판사, 2008  게재 원고 일부

저작권 문제로 일부만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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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 인간소외와 시장논리

현대문화의 특징 중의 하나는 누구나 주체가 되어야 할 개인의 개성과 그 표현방식의 다양성이다. 획일화된 전체 속에서 자기 자신을 하나의 부속품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마찬가지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고도의 산업사회에서 나타나는 개인주의의 양상은 조심해서 보아야 할 점이 많다. 대중매체를 통하여 혹은 인터넷 문화를 통하여 오히려 첨예화된 개인주의가 만연해 간다. 공동체 의식은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로 오해되고 있다.

고립화된 개체만이 남게 되어 우리들 개인 개인들이 상업주의의 희생물이 되어 가고 있다. 개인과 개인과의 벽은 점점 더 높아져만 가고 성벽에 갇혀진 나는 이제 나를 지키기 위하여 타인을 비방하고 공격한다. 그래서 점점 함께 사는 공동체의 모습을 찾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렇게 함께 사는 공동체의 끈이 모조리 끊어 진 채, 그런 관계의 끈이 없어진 나는 생존에 대한 강박감 때문에 남을 헐뜯거나, 남이 안 볼 때 쓰레기를 대충 버리는 등의 무임승차를 하거나, 자신을 쉽게 포기하는 자아상실 혹은 편집광에 가까운 오만함에 빠질 수 있다.

이제 현대인은 기계화된 산업화 속에 매몰된 자아를 찾으려는 나름대로의 노력을 많이 한다. 자기 자신이 기계나 사회조직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당당히 삶의 주체자로서 행동하고 싶어 한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많은 현대인은 회사의 과장으로서의 나, 두 아이의 아비로서의 나, 동창회 총무로서의 나, 교회 집사로서의 나 등으로 답변을 하고 만다.

이제 그러한 내가 진정한 나인지를 되물어야 한다. 어떤 역할 속에서의 내가 아니라 나의 삶의 진정한 주체자로서의 나를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철학에서는 어려운 말을 써서 ‘소외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한다.

주체적인 나를 찾기 위하여 먼저 할 일은 내가 남과 더불어 살고 있다는 생각을 잊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남이란 지금이라는 시점에서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람도 포함한다. 시간적으로 떨어진 타인은 곧 나의 자손이며 내 삶의 계승자일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타인을 생각하는 일은 전지구적 환경을 생각하는 출발점이다. 그 역사적 타인은 나의 자손과 지구 저편 사람들의 자손까지도 포함한다. 왜 나 하나 살기도 어려운데 그렇게 멀리 있는 남까지도 생각해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야만 나도 비로소 잘 살 수 있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특히 현대 사회는 더욱 그러하다.

현대를 보통 정보사회라고 말하는데, 정보사회가 되면서 지구 구석구석이 더욱 가까워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분명히 과학의 산물이다. 이유야 어쨌든 교통과 통신의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해 나와 남이 더욱 가까워졌다. 이렇게 과학기술을 통해 외형적으로는 서로 가까워졌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나만의 아성을 더 높게 쌓고 불필요한 소비만을 낳게 하는 거대한 상업주의를 거들어 주고 있을 뿐이다.

과거에는 자기가 사는 지역만이 세계의 중심이었고 세계의 전부였다. 그 작은 세계 안에서 나는 세계와 일대일로 대화하는 주체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한 세계관을 보통 신화적 자연관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신화의 시대에서 문자의 시대로, 그리고 정보의 시대로 변화한 세상 한 가운데 살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언어로 우리의 자연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자만하게 되었다.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자연과학을 만들었고 자연과학을 통해서 자연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사람들의 오만함은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고 정복할 수 있다는 오만함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고 정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오늘날 우리 현대 문명에 지배적이다. 1970년대 중반 미국 하와이주 환경위원회에서 밝힌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방식을 보면 인간 오만함의 현주소를 그대로 파악할 수 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인간이 환경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다.

2) 나는 남과 적대관계에 놓여 있다.

3) 나에게 중요한 것은 공동체보다는 개인 위주의 생활방식이다.

4)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이다.

5) 자원창고 자연은 그 자연에 잠재한 물량이 무제한일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다.

6) 경제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경제결정론이 상식이다.

7) 과학기술이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것이다.

이상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인간중심적인 생각들은 지난 100년 동안 과학기술의 급속한 성장을 바탕으로 무한한 왜곡의 역사를 낳게 하였다. 과학기술을 통한 산업화를 이루면서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얻었지만, 사람들은 상업주의 전략에 빠져 이기적 개인주의를 마치 특별한 개성의 표현인 양, 자기만 잘났다고 하는 것을 자신의 주체성인 양, 자기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고 남과 벽을 만드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말았다. 현대인의 자가당착은 인간위기와 더불어 전지구적인 환경위기를 초래해 가고 있다는 징후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요즘 눈앞의 경제문제, 사회문제가 심각하여 정치인들은 환경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 역시 환경문제에 대한 무임승차 의식은 더 커져만 간다. “남들 다 그러는데 나 하나쯤이야”, “여태까지 늘 그래 왔는데 갑자기 왜 야단이야”,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환경 타령이야” 라는 삶의 습관 때문에 환경은 더욱 심각해져 간다.

환경문제가 아니라 곧 나의 삶의 위기인 것이다. 환경문제는 분명히 심각한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무임승차가 당연시되고 있고 더욱이 요즘은 경제 회오리에 휩쓸려 거의 실종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그러한 환경위기가 아니라, 오늘의 환경위기를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진짜 위기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과 비판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환경위기의 원인이 단순한 물질적 오염이기보다는 의식 오염으로부터 야기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의식의 오염은 새로운 물질적 욕구를 낳게 되며 다시 끝없는 악순환을 반복할 뿐이다. 의식의 오염은 현대인의 소비 유형을 왜곡시키고 말았다.

기업은 소비자로 하여금 소비가 곧 시장의 미덕이라는 의도된 오류를 심어주고, 이런 소비를 위해 자원의 무한 공급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환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 환상은 수많은 크고 작은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점이 오늘의 현실이다.

예를 들어 지구 곳곳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대부분은 석유자원과 관련한 전쟁임을 새삼 말하지 않아도 된다. 석유 부존자원이 없는 한국이 일인당 석유소비량이 세계 최고라는 사실은 우리의 환상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예측된다. 나아가 전세계적으로 계획 자체를 철회하거나 폐기하는 추세인 원자력 발전소 건립을 한국은 앞장서서 추진하고 있다. 이는 곧 우리의 의식오염의 결과이기도 하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정부는 핵발전이 매우 안전하며, 최고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밀어 붙이고 있다. 그들은 단기간의 경제기준에 눈이 멀어 핵발전의 반환경적 위험요인을 무시하고 만다. 환경기준을 내세우지 않고 단지 경제 기준을 따진다고 하여도 핵발전은 위해하다. 장기적 관점에서 핵발전은 매우 비경제적이라는 말이다.

핵발전소 건립 이후 야기되는 문제를 잘 따져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핵발전에서 생기는 폐기물은 저준위와 고준위 폐기물로 나눠지는데, 일반 폐기물 개념과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핵로에 직접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것을 고준위 폐기물이라고 하고, 비록 간접 노출이지만 위험요인이 상존하는 폐기물 등을 저준위 폐기물이라고 한다.

노동자들이 사용했던 장갑이나 공구는 물론이거니와 핵로 주변의 콘크리트 구조물은 발전 설비 건축물 수명이 끝나는 그 순간부터 먼지 하나하나까지 모두 저준위 폐기물에 해당한다. 결국 일반 건축물 폐기물 버리듯이 할 수 없고 일일이 몇 만 년 보관해야 할 폐기물인 셈이다.

핵발전소는 수명이 다한 후에 아파트처럼 재건축할 수도 없고 폐기해야 하는데, 이 때 건축 폐자재인 콘크리트 조각 하나하나 모두가 영구히 보존해야할 방사능 노출위험 폐기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핵폐기물 처리에 드는 비용이 상상을 초월하여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가치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부담이 되어 돌아온다.

최종덕 외 다수, 문화와 철학(동녁출판사, 2008)  원고 중 일부
문화와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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