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문학의 자기성찰과 혁신- 질문과 답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2009년도 인문정책개발 전문가 자문

한국 인문학의 자기성찰과 혁신 - 철학 부문

 

질문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2009
답변자: 최종덕 (서양철학 부문)
답변일: 2009년11월3일

1) 인문학 위기 및 발전 저해의 요인을 한국 인문학계 내부에서 찾아본다면 어떤 점을 지적할 수 있을까요?

1단계 : 많은 기성 교수들

● 국내대학의 인문학 계열 교수진들의 역사의식 부족하여, 왜 내가 이런 공부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 희박하다.

● 자기가 공부한 커리큘럼 외에 일체의 타 분야 인문학의 이해도가 매우 부족하다. 이 경우 자기만의 성곽에 쌓인 지식만을 승계하는 것을 학문의 순수성 혹은 인문학의 고유성이라고 고집한다. 학제간 연구, 학문간 교류라는 시대적 명분을 내세우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선비 스타일이라는 자기 합리화를 통해 자기 지식만을 고집한다.

●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자의 위기라는 몇몇 명제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삶과 세계를 고민하는 인문학자는 많지 않으며 실적점수계산용 학술논문을 쓰기 위한 최소한의 지식을 갖는 교수들이 적지 않다.

2단계 : 공부를 어느 정도 하는 교수들

● 논리적 장르와 상상력의 장르, 내적 정합성의 체계와 외적 역사성의 체계의 융합이 인문학의 중요한 측면이다. 그러나 현실은 한편의 장르와 체계를 갖고 상대를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 부문과 고증학적 철학 부문에서 강세를 보이는 형식적 실증주의 학자들은 학문의 엄밀성을 내세워 시대적 문화학 연구자 혹은 사회참여적 연구자들을 학문적 미숙함이라고 비난한다. 특히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마음 속으로는 보수적 학문방법론을 고수한다. 그 반대로 사회참여적 학자들 역시 보수적 학문방법론의 연구자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 그 동안 많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국내학위 연구자와 외국 유학 학위자간의 차별이 존재한다. 나아가 미국 유학 출신과 유럽유학 출신 사이의 학문적 소통이 미흡하다.

● 학제적 연구 그 중에서도 거리가 상대적으로 멀리 느끼는 인문학과 과학 사이의 학제적 연결은 거의 전무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 영역에 대하여 상호이해는커녕 경계심의 골이 깊어서 학제적 연구라는 말은 수사적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2) 위의 원인을 서양철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떤 답이 가능할까요?

● 앞으로는 전공영역을 서양철학, 동양철학으로 구분하는 방식을 없애고 단지 하이데거철학, 도가철학, 과학철학, 현상학, 주자학, 들뢰즈철학 등으로 구분되어야 한다.

●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더욱이 인문학 연구자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 그래서 왜 내가 이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공동체 학문의식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3) 인문학 연구 및 교육 영역에서 인문학 위기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할 때, 우선 어떤 점이 바뀌어야 할까요?

● 처세술과 경영론이 지배하는 세상의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문사철을 중시하는 사회적 가치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론적 주장과 구호만으로는 안 되며 인문학을 공부해도 미래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 사회시스템이 필요하다. 학술진흥재단 등의 학술단체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연구자 개인에게 혹은 학문후속세대 나아가 인문학 부문 학생들에게 개인적으로 열심히 인문학 공부하라는 말만 되풀이되어서는 문제해결이 될 수 없다.

● 제도권 교육제도에서 인문학 관련 교양교육이 확대되어야 한다.

4) 위의 대안을 서양철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떤 답이 가능할까요?

● 이런 질문은 답변하기에 너무 어렵다.

참조:
인문학 공부의 길은 공부하는 이유와 공부한 내용으로서의 지식이 반드시 남과 더불어 공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공유로부터 실천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을 공유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그것이 가짜거나 베낀 지식이어서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을 때, 아니면 윗자리 사람에게 전시효과만을 노린 보고서로 그칠 경우이다. 지식이 공유되기 위하여 공부하는 마음속에 역사의식이 녹아나야 한다. 거창한 역사가 아니라 내가 왜 이 지식을 섭취해야 하는가하는 자기 물음이 바로 역사의식이다. 인문학자나 사회학자는 물론이거니와 과학기술자나 직장의 중견인이든지, 내가 속한 사회의 아픔을 실천으로 풀고자 하는 모든 이가 바로 공부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지식인이다. 그러나 요즘은 지식이 정보의 개념으로 그리고 소위 지식산업이라는 경제의 가치기준으로 바뀌어가면서 지식의 역사적 문맥을 묻는 질문이 안타깝게도 소실되어가고 있다. 지식의 가치기준이 바뀌어 가는 현상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의 의미를 나의 역사의식에 담아내야 한다는 말이다.


5) 학제적 연구를 통해 인문학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오늘의 추세에 대해서 어떻게 보는가? 특히, 문학, 사학, 철학의 분과학문 체제를 넘어 ‘통합인문학’ 연구 및 교육과정을 개설하는 것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하신가요?

● 연구의 가능성을 확충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그 보완이나 대안들을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았다.

1) 학제간 프로그램은 어느 분과학문에 소속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인 지원책이 결여되기 쉽다. 따라서 대학 차원에서 혹은 정부 차원에서 장기적인 지원정책이 있어야 한다. 몇몇 공공 혹은 사설 학술재단에서 학제간 공동연구 지원프로그램이 있기는 하지만 그 규모가 작고, 책정과정의 기준이 명료하지 못하다.

2) 자연과학과 공학에 치중된 현재의 상태를 벗어나 인문학이 참여하거나 주도할 수 있는 협동과정이 운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인문학에 대한 편파적이고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쉽게 해결되지 않는 실정이다. 과학기술과 그에 따른 산업화나 정보화가 우리 사회 흐름의 가장 큰 지배적 요소라 하여도 인문학의 존립가치는 당위적이다. 이런 이야기를 인문학자들 사이에서 말하면 너무나 당연한 소리겠지만, 실제로 일반인들과 정책가들은 물론이거니와 대학의 교수들 사이에서도 인문학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사람은 의외로 적은 것이 현실이다.

3) 앞서 말했지만 학제간 협동과정은 창의적인 주제와 지속적인 방향성을 유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존의 협동과정 외에 아래와 같은 사례를 더 생각해 볼 수 있다.

현대문화와 미디어 협동과정 : 문화공학과 문화산업, 인간학 연구를 통한 창의성 개발
예술과 건축사 협동과정 : 건축술의 사회적 배경, 미학, 건축물을 통한 자연관 연구
여성학 협동과정 : 인문사회과학 통합적 연구 (Brown 대학의 경우:󰡔Pembroke Center for Teaching and Research on Woman)
상상력 연구 : 그레노블 III대학의 경우 문학, 기호학, 철학, 미학이 함께 하는 박사과정 학제
환경생태학 협동과정 : 기존의 공학적 접근이 아닌 인문사회과학과 공학의 연대연구
인문천체지리 협동과정 : 천문학과 고대사학 인문지리학의 연대 연구
이미지 공학 협동과정 : 예술사, 미학, 철학, 회화, 사진, 컴퓨터 그래픽 등의 프로젝트 특성 연대연구
통일준비 학제간 협동과정 : 사회과학 전반을 거친 공동연구
서지학 협동과정


4) 창의성과 목적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타 전공 학자간 공동연구가 필요하다고 앞서 말했지만 학제간 공동연구를 성취하려면 한 사람의 학자에 의한 학제간 통합 연구영역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의 학제간 공동연구는 최소한 그 중 한 사람에게서 두 영역을 넘나드는 개인연구가 선제되어야 공동연구의 실질적인 성과가 나온다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과 같이 정보홍수 속에서 한 연구자가 양쪽의 연구를 같이 하기 어려운 경우, 지속적인 학제간 독회 혹은 세미나를 하면서 공동연구를 수행한다.

5) 학제간 프로그램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하여 먼저 학문 혹은 전공간의 심화된 고립과 소통불가능을 낳게 하는 한 주범으로서 고등학교 교육의 분반제도이다. 이과 반과 문과 반을 나누는 전근대적인 관행을 하루 빨리 없애야 한다. 이 문제는 대학입시 전형제도와 연관된 문제이므로 간단하지 않지만 반드시 없어져야 할 병폐이다. (김영식, “문과, 이과 구분의 임의성과 그 폐단”, 과학사상연구회 편, 과학과 철학 4집(1993), 20-34쪽, 참조) 이런 문제가 개선된다면 최근 갈등을 빚고 있는 교차지원의 부작용 등이 자동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6) 지식의 전문화는 학문영역의 협소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학제간 영역을 같이 소화해낼 때 가능해진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7)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공동연구 혹은 학제간 연구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연구주제의 개방성과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하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이뤄져야 한다.

8) 예술과 현장의 연대 작업, 혹은 문학과 다양한 매체가 공조할 수 있는 연계교육의 필요성을 현실화해야 한다.

9) 결론적으로 말해서 제도적인 장치가 매우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학자의 개방된 연구자세가 가장 필요한 선결조건이 된다.



6) 인문학 위기에 대한 담론이 인문학 위기를 넘어서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시는가요?

● 8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한 글쓰기 담론은 우리의 인문학을 자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난 한 세대 동안 한국의 다양한 잡지와 세미나에서 동아시아 담론이 거론되어 왔다. 그리고 최근 들어 동아시아 담론의 실천적 대안과 관련하여 전통과 근대 혹은 근대와 탈근대, 종속과 탈식민, 정체성 찾기와 민족주의, 과학비판과 문화담론, 문명의 위기와 관련하여 환경과 생명사상 논의, 우리의 글쓰기와 오늘 속의 고전읽기, 나아가서 정보사회론까지를 말하고 있다. 그 다양한 논의 속에서 그 안에는 자아 찾기의 과제가 공통분모로 들어 있다. 박현채, 이영희, 조동일, 백낙청으로부터 조한혜정, 정재서, 강내희, 김영민, 김교빈, 이승환, 한형조, 김진석, 등의 새로운 세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갈등구조를 풀어가려는 시도가 인문학의 과제로서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인문학의 식민 잔재는 여전히 남아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하여 우리는 역설적으로 서구가 동양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떻게 놓여져 있는지를 바르게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7) 해방 이후 인문학의 성숙을 위한 서양철학계의 노력이 있었다면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요?

●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철학 분야에서도 그 논문편수의 양은 매우 늘어났다.

● 90년대 이후 서양철학연구자 신진세대에 의해 자기반성의 시간과 공간을 확장해왔다.

● 철학아카데미, 인문아카데미 수유연구 등 인문학의 새로운 창구를 확산하고 안정화하는 구체적인 변화가 있었다. 대중과의 만남뿐만이 아니라 철학과 같은 인문학의 내재적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8) 서양철학 연구 및 교육에 있어 ‘전문연구자의 육성’과 ‘인문적 소양을 지닌 시민양성’이라는 가치를 양립시킬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 인문적 소양을 지닌 시민이 양적으로 많아야만 전문연구자의 수준과 규모도 높아질 수 있다. 전문연구자의 개념이 무엇인지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대와 고립된 고증학적 연구만을 전문연구자라고 자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전체 연구의 한 축이며 자료수집연구에 중요한 부분이지만 인문학 전문연구의 범례는 될 수 없다.

● 시민의 인문적 소양이란 결국 한 인간의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과학기술과 물질문명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인간소외의 골은 깊어져가고 그에 따른 인간학적 부작용이 급속히 늘어가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자살, 이혼, 우울증, 마약, 향락산업, 일상화된 권력, 가정폭력 등을 말한다. 현재까지는 이런 인간학적 부작용을 수용하는 공간이 종교였다. 그러나 종교 역시 소외의 해소보다는 자폐적 소외를 확산하는 데 일조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기복종교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인간소외의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기복적 종교행위에서 벗어나야만 가능하다. 그 대안이 바로 상식적 인문학 공부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가적 인문학의 공부를 일상적 인문소양 공부와 연결해야 한다.


9) 인문학의 세계화가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인문학의 중요한 특징은 지역적, 역사적, 시대적 고민을 담아낸 인문학이 곧 인문학의 세계화라는 점이다. 인문학은 보편성이 우선하며 따라서 세계화와 지역화가 구분되어서는 안 된다. 인문학의 보편성을 부정하는 것은 곧 인간성이 지역마다 다르다는 우생학적 인문학의 탄생과 유사한 통로를 갖는다.

인문학도 학문의 보편성을 이뤄내야 하지만 그 보편성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특수성이 선제되어야 한다. 개별 운동사례들의 귀납적 추론으로부터 일반법칙을 구하는 자연과학 연구와 똑같지는 않지만, 삶과 역사에 대한 개인의 갈등과 고민으로부터 학문의 보편적 논제가 형성되는 인문학 연구의 초발심을 염두에 두면 된다. 그러자면 먼저 인문학의 자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인문학의 자립성은 그 학문이 행해지는 토양에 뿌리내리는 일이다.


10) 한국 현대사에서 그동안 이루어진 인문학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그 개선안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특히 서양철학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그 개선안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교과과정 및 교수방식 등을 포함하여 개선안을 제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인문학에서 타율적 근대화의 왜곡된 결과를 다음의 세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첫째, 개발독재의 물질만능주의에서 온 인문학의 급격한 쇠퇴이다. 둘째,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위세를 충실히 등에 업고 오늘까지 학문의 풍토를 잡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동양과 서양의 갈등이 곧바로 전통과 근대의 갈등 양상으로 정착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근대화의 과정에서 문제삼는 것은 학문의 분화현상이다. 천주교의 유입과 함께 서구의 학문이 들어오면서 학문은 다양해졌다. 그리고 그 다양화의 과정에서 전통에 대한 심각한 반성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전통에 대한 반성은 동도서기론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곧 서양학에 대한 무분별한 수입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 문제였다. 근대화된 철학잡지의 시효라고 하는 󰡔신흥󰡕(1929.1-1937.1)과 󰡔철학󰡕(1933.7-1935.6)은 서양철학 수입 1세대 논문들이 들어와 있다. 문제는 동학의 개념이 서학에 대한 반작용으로 들어섰듯이, 근대 학문의 작업이 동양학이 아닌 서양학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그 잡지에 실린 논문의 경향을 보면 주로 마르크스 철학과 헤겔, 그리고 실존주의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경향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퇴율에서 최한기로 이어지는 전통의 학문은 전근대라는 오명을 쓰고 뒷전으로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뿐이다.

그 이후 60년대까지 학문의 경향은 일본의 근대화된 분화학문을 그대로 수용하였고, 60년대 후반부터 미국 유학 학자들이 국내로 들어오면서 학문은 철저히 전공화되어 버렸다. 남이 하는 학문은 나의 학문과 다르고 자기의 전공영역을 보호하고 남이 자기 전공을 건드리면 인신공격까지 서슴치 않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제 동양학과 서양학은 넘을 수 없는 다리를 건너갔으며 언어적 장벽이 곧 사상의 장벽으로 바뀌게 되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 역시 동양언어와 서양언어의 차이 이상으로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하여 서로 번역될 수 없는 암호의 소유자끼리 갖는 마치 소 지붕 닭 쳐다보기처럼 되어 버렸다. 학문의 분화가 첨단 학문이 발전하는 자연스런 과정이라는 것부터 잘못된 생각이었다.

● <철학사> 교육과 <합리적 사유 및 논리학> 교육이 강화되어야 하며 한편으로는

인문사회 계열의 경우 턱없이 부족한 커리큘럼을 보완하기 위하여 원생이 이동하는 수업과 그리고 교수가 이동하는 수업 등의 대학간 공동 커리큘럼 운영을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재정난의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물론 현재도 몇몇 대학에서는 대학간 학점교류를 하고 있지만 각각의 대학원 내의 묘한 분위기 때문에 한 대학의 원생이 다른 대학의 대학원 수업을 수강하는 일이 쉽지 않다.




11) 미래 한국 인문학의 개성 정립과 그 전망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답변 별첨


12) 선생님이 속해 있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인문학자들의 주제담론은 어떠한가요?

●답변 별첨

13) 제도 바깥의 인문학(노숙자, 소외계층, 노숙자, 시민대상 등에 다가가는 실천인문학) 활성화에 대해서 어떻게 보시며, 활성화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면 발전 방안은 어떠해야 합니까?

● 제가 속한 지역에서 시행 중인 학진 발주 시민인문강좌 프로그램 자료를 첨부함.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회과학 사이의 학문적 대화가 끊어진 지는 오래고, 같은 전공자들끼리도 다른 세부전공일 경우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개념의 세계에서 언어의 맴돌이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로부터 학문행위는 언어의 유희가 되고, 학문의 권위가 등장되며 자기만의 소유물로 가두어진 지식의 경쟁이 나오게 되었다. 지식을 암호화시키거나 폐쇄된 자기만의 고유논리로서 상대의 지식을 폄하하고 남이 아직 건드리지 않은 수입지식을 갖고 학문의 권위를 내세우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학문의 보편주의를 잘못 이해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학문의 가치중립성을 바로 보편주의라고 보는 맹아가 학문의 편식을 낳았다. 이러한 잘못된 보편주의는 내가 학문을 하는 이곳의 고민과 아픔을 담아내지 못한 유사학문적 수사법만을 남길 뿐이다.


14) 현존하는 정부의 인문학 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그 개선은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가? 특히, 정부의 학문정책 및 지원제도가 동양철학 연구 및 교육에 미치는 긍정적인 점과 부정적인 점에 대해서 말씀해주십시오.

● 과학과 인문사회 영역을 합쳐 놓음으로써 과학연구 시스템에 종속당하는 속도가 더 세질 것이 분명하다.

● 세부적인 측면에서 한 사례를 들어본다. 이번 HK사업의 경우, 대학연구소의 인문학 특성화와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지원정책이 주요 목적이었다. 이 목적을 수행하는 절차에서는 결국 기존 유명대학에 지원을 몰아주는 결과를 낳았다. 가장 비인문적 인문정책인 셈이다. 이 문제를 해소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연구소 지원정책을 유지하되 대학 소속연구소가 아닌 통합형 연구소 지원정책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대학 소속 연구소로 제한할 경우, 소속대학에 연관한 인간관계 안으로 연구인력이 제한되는 사례가 발생한다. 아젠다를 중심으로 해당 아젠다에 전문가들이 대학소속을 초월하여 모인 연구소가 hk사업의 수혜자가 되었어야 한다. 연구비 중앙관리가 쉽지 않아서 대학 소속으로 제한한 것으로 판단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내용이 아닌 형식적 정책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15) 철학박사 학위 취득자들에게도 중등교원자격을 부여해, 중고등학교에서 교사직을 수행하게 하는 것에 대해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요?

● 학위자들에게 자동적으로 교원자격을 주기보다는 어린 학생을 이해하는 별도의 특수 프로그램을 제도화하여 추가의 과정을 거친 후 교원자격이 부여되어야 한다. 쉽게 말해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하며, 학위수여자의 자동연장이 아니라는 뜻이다.

● 그렇지만 전반적인 한국상황을 고려하여 본 사안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16) 철학 전공 연구자 및 전공자의 사회적 지위와 위상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어떻다고 보십니까?

● 이중적이다. 쉽게 말해서 아직까지 철학연구자에 대한 존경심은 어느 정도 있지만 예를 들어 배우자로서 선택되지는 않는다. 다 아는 일이지만 말이다.


17)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의 인문학 정책에 어떤 문제점이 있다고 보시는지, 아시는 대로 지적해 주시고, 혹여 개선방안이 있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학진과 과학재단이 통합되는 것을 보면 전체를 파악할 수 있으며 인문학 향후를 예측할 수 있다. 두 영역 사이의 관리시스템 통합은 학문의 내용에서도 대등관계가 무너지고 종속되어짐을 의미한다.

● 한국에는 진정한 보수가 없다는 말을 듣는다. 이 말의 뜻은 쉽게 말해서 보수 권력이나 보수 정책이라고 자처하는 집단 역시 인문학을 이해하는 경우에만 진정한 보수의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말이다. 심하게 말할 수 있다면 보수든 진보든 인문학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들은 인간 없는 맹목적 기계 관리자에 지나지 않는다.

18) 마지막으로 철학 교육 연구 및 교육의 혁신의 목표와 방향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자유롭게 밝혀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동양과 서양, 현대와 전통, 과학과 인문학을 나아가 삶과 세계를 연결하는 길을 철학연구 및 철학교육의 방향으로 둔다.


진화인문학은 인문학의 공부 내용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방식을 일러 말한다. 진화인문학은 첫째, 인문학의 결과적인 완성형을 추구하기보다는 진행형인 과정을 중시한다. 그래서 그 공부의 과정은 구체적이고 실천의 연계성이 있어야만 한다. 둘째, 세계와 삶을 분리하지 않으며 삶을 말하여도 세계를 보는 눈을 잃지 않으며, 세계를 말하여도 삶과 유리된 추상적인 하늘 이야기에 국한하지 않는다. 셋째 가치중립성이라는 자연과학의 탐구와 같이 개체보존적 공부에만 그치지 않으며, 역사를 접점으로 갖는 계통보존적 공부의 길을 찾는다는 점이다. 개체보존형의 공부는 자기보존을 그 목적으로 두지만, 계통보존형의 공부는 삶의 재생산성의 모습을 가져야 한다.

동양과 서양이 반드시 만나야만 우리가 안고 있는 역사적 문제들을 조금씩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서양의 종합이 이루어지기 위해 먼저 반드시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정립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차이의 부각에만 그친다면 국수주의 혹은 민족주의 아류에 머물고 말 것이다. 차이의 정립은 종합을 위한 과정적 단계일 뿐이다. 과정을 거처 우리는 방법론과 문제 의식까지를 공유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서양의 자연철학과 동양의 자연철학을 종합하는 듯이 보이는 작업은 거창한 학제간 연구이기보다는 한 논문의 작은 구성 요소로서 인정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기 위하여 동양학을 공부하려는 후배들은 서양철학의 역사적 흐름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서양철학을 공부하려는 후배들도 동양철학을 다른 전공으로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현상학 수업을 수강한 후에 하버마스 수업을 수강하는 그런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본다.



박스로 처리한 답변은 본인의 저서 <인문학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휴머니스트,2003)에서 참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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