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진화:철학사의 조명
진보주의의 시선에 비친 진화론은?

진보평론 가을호 (41호) ‘진화론’ 특집

우생학·파시즘에 오용된 진화론 복원


진보와 진화





공교롭게도 진보주의와 진화론의 핵심 개념은 왜곡과 오용의 20세기를 함께 겪었다.
진화는 우생학과 파시즘에 의해, 진보는 스탈린식 생산력주의와 일당 독재에 의해 더럽혀졌다.
세기가 바뀐 지금 진보주의와 진화론이 직면한 처지는 확연히 다르다.
진화생물학이 유전학과 생명공학의 성취에 힘입어 모든 분과학문을 아우르는 통합과학의 중핵적 지위를 넘보고 있는 반면,
진보의 견인차를 자임하던 사회주의는 동구권 몰락과 함께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
무엇이 이들의 운명을 갈라놓았고, 엇갈린 둘의 운명은 또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최종덕 상지대 교수는 진보주의를 타락시킨 목적론과 본질주의를 비판하면서 다윈 진화론에서 진보의 출구를 모색한다.
최 교수에 따르면 진보는 ‘형이상학적 진보’와 ‘자유주의적 진보’, ‘사회적 진보’ 등으로 구분되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분명한 지향점이 있다는 것이다.
형이상학적 진보에서는 ‘이데아의 세계’나 ‘종말’ ‘유토피아’가 진보의 목적지라면
자유주의적 진보에서는 자유의 확대가, 사회적 진보에서는 지배와 불평등의 해소가 곧 진보다.

문제는 진보가 특정한 목적지를 갖는 이상 언제든 현실 권력에 봉사하는 지배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농민의 유토피아를 지향한다던 캄보디아가 생지옥 킬링필드로 변하고,
노동자 천국을 표방하던 소련이 관료의 낙원으로 전락한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진보주의에서 목적지를 제거하는 것이야말로 진보를 구원하는 길이라는 게 최 교수의 주장인데,
그는 이 ‘목적 없는 진보’의 가능성을 진화론에서 발견한다.

“다윈이 말했던 진화론의 핵심은 생명 자체가 지금도 변화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진화론은 기존 서구철학의 전통과 달리 생명종(種)의 고정된 본질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진화론은 반실체주의이며 반본질주의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진보평론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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